'게임 종주국' 우뚝 일으킨 김정주…韓 벤처 1세대 신화 저물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 /사진=넥슨

국내 벤처 1세대이자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 NXC 이사가 향년 54세로 별세했다.

1일 넥슨 지주회사인 NXC에 따르면 김 창업자는 지난달 말 미국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NXC는 정확한 사인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고인은 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 들어 악화된 것으로 보여 안타까울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 창업자는 게임 불모지였던 한국을 온라인게임 종주국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8년생인 고인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석사를 취득했다. 박사과정을 6개월 만에 그만두고 1994년 26살의 나이로 넥슨을 창업했다. 카이스트 재학시절 개발한 '바람의나라'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한국 게임업계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대외활동에 나서는 일이 적어 '은둔의 경영자'로도 불린다. 실제 그는 창업자지만 2005년 넥슨 대표이사에 오를 때까지 10년간 경영 일선에 나타나지 않았다. 넥슨 대표로 취임한지 1년 반도 되지 않아 2006년 11월 넥슨홀딩스(현 NXC) 대표로 물러나기도 했다.
'미다스의 손' 김정주 "보다 자유로워 지겠다"김 창업자는 인수합병(M&A)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게임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지난 2004년 '메이플스토리' 개발사인 위젯을 시작으로 '던전앤파이터'의 네오플, '서든어택'의 게임하이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넥슨을 국내 대표 게임사로 성장시킨 게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가상화폐 거래소 '코빗'·'비트스탬프'를 사들이는 등 비게임 분야 투자도 확대했다.

지난 2020년 국내 게임사 중 최초로 연매출 3조클럽에 가입한 넥슨은 명실상부 글로벌 게임사로 성장했다. 2011년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후 10년 만에 기업가치가 4배 가까이 늘면서 닌텐도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게임사에 우호적인 일본에 상장해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고 글로벌 진출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김 창업자의 승부수가 통한 셈이다. 포브스의 지난해 6월 발표에 따르면, 김창업자는 자산이 110억달러 규모로 국내 3위 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탄탄대로만 걸어왔던 것은 아니다. 김 창업자는 고교 동창인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 주식 등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김 창업자는 넥슨재팬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서울대 공대 1년 선배로 친분이 깊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의기투합해 미국 EA(일렉트로닉아츠)를 공동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며 갈라섰다. 2019년엔 김 창업자의 넥슨 지분 매각도 추진했으나, 매각가에 대한 이견으로 최종 불발됐다.

김 창업자는 지난해 16년간 맡아왔던 NXC 대표직도 내려놨다. 현재 NXC는 브랜드홍보본부장이던 이재교 신임 대표가 이끌고 있다. 당시 김 창업자는 "지주회사 전환 후 16년 동안 NXC 대표창업자를 맡아왔는데, 이제는 역량 있는 다음 주자에게 맡길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며 "저는 보다 자유로운 위치에서 넥슨컴퍼니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겠다"고 밝힌 바 있다.